역경 속에 피어난 희망의 씨앗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 그것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흐릿하면서도 선명한 감정으로 남아있다. 내 유년기는 전쟁의 그림자 아래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의 첫 기억은 아버지와 관련되어 있다.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그분의 얼굴은 안개 속에 가려진 듯 희미하다. 그저 가끔 출장에서 돌아오실 때 "아빠 온다!"라고 외치며 마중 나갔던 순간만이 내 기억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그 짧은 순간들이 내게는 전부였다.

어머니는 홀로 우리 형제들을 키우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지만, 직장에 다니시고 장사도 하시며 우리를 먹여 살리셨다. 어머니의 그 헌신과 사랑이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 되었다.

학창 시절, 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다. 학업에서는 두각을 나타냈지만, 사회성 면에서는 다소 부족했다. 초등학교 시절 내내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반장이나 급장으로 임명되었을 때는 큰 부담을 느꼈다. 앞에 나가 말을 해야 할 때면 더듬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나를 성장시켰다. 한번은 급장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선생님께서 다른 학생에게 그 자리를 넘기신 적이 있다. 그때 느낀 부끄러움과 자책감은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부터 나는 용기를 내어 급장 역할에 도전했고, 점차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 마당은 내 어린 시절의 전부였다. 구슬치기, 재기치기, 땅뺏기... 이름만 들어도 그 시절의 추억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했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했다. 오히려 그런 환경이 우리를 더 강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었다.

식습관에서도 나는 남달랐다. 체질적으로 육류를 먹으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특이체질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나물과 채소가 내 주식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식습관이 오히려 축복이었다. 자연이 주는 선물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자란 덕분에, 나는 자연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건강한 삶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6.25 전쟁은 내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피란"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 가족은 산으로 피신을 해야 했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전쟁의 공포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의 빛은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박익훈 교장선생님이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우리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셨다. "여러분, 지금은 전쟁 중이지만, 여러분이 이 나라의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세요. 이 산골에서 공부하지만, 여러분의 장래는 밝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우리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했다.

대구로 이사를 온 후, 나의 학창 시절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경북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만난 훌륭한 선생님들은 내 인생의 근간을 형성해주셨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토요일마다 결석을 했지만, 선생님은 체벌 대신 따뜻한 조언으로 나를 대해주셨다.

대학 입학은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합격 소식을 접했을 때의 그 환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단 20명만을 선발하는 학과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다. 그 순간의 기쁨과 성취감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지금 이 모든 경험을 되돌아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 시절이 나를 지금의 내가 되게 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젊은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다. 여러분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어떤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라.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라. 그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이 여러분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